룸톤 Roomtone TIL 5
수백 곡을 다 들을 수는 없었다
생성 도구는 곡을 만들다가 6분이나 8분 언저리에서 그냥 잘라 버릴 때가 있다. 끝이 뚝 끊기는 곡이다. 매장에서 이게 나오면 바로 티가 난다.
문제는 수백 곡을 하나하나 끝까지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. 그래서 사람 대신 소리로 판정하기로 했다. 제대로 끝나는 곡은 마지막에 소리가 잦아드는데, 잘린 곡은 맨 끝까지 소리가 그대로 크다. 끝부분 음량만 보면 갈릴 것 같았다.
사람이 못 하는 양을 기계로 거르는 것은 자동화의 정석이다. 다만 「사람이 듣는 것」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게 아니라, 사람이 듣고 판단하는 근거를 숫자 하나로 바꿀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.
처음 만든 기준으로는 절반이 걸렸다
첫 기준은 곡 전체의 평균 음량과 맨 끝을 비교하는 것이었다. 끝이 평균보다 크면 잘린 것으로 봤다. 돌려 보니 곡의 절반이 걸렸다.
배경음악은 원래 긴 페이드가 없다. 끝까지 비슷한 크기로 가다가 짧게 마무리되는 곡이 정상이다. 그러니 평균과 비교하면 멀쩡한 곡도 다 걸린다. 기준이 잘못된 게 아니라, 비교 대상이 우리 곡의 성격과 안 맞았다.
그래서 「끝 직전 몇 초」와 「맨 끝」을 비교하는 것으로 바꿨다. 곡마다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셈이라 장르나 편곡이 달라도 흔들리지 않고, 진짜 하드컷만 남았다.
자동 판정에서 어려운 건 판정하는 방법이 아니라 무엇과 비교할지를 정하는 일이다. 전체와 비교할지, 직전과 비교할지, 다른 곡과 비교할지에 따라 같은 방법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.
걸린 곡을 지우지 않고 고치기로 했다
걸러 낸 곡을 어떻게 할지도 정해야 했다. 지우면 깨끗하지만, 곡 하나를 만드는 데 한 달 몫의 생성 한도가 들어간다. 끝만 어색한 곡을 통째로 버리는 건 아까웠다.
대신 끝에 4초 페이드를 걸어 스르륵 사라지게 마감했다. 원래 끝이 그랬던 것처럼 들린다.
고치면서 하나 챙긴 게 있다. 고친 파일을 새 곡으로 올리면 그 곡에 붙어 있던 분위기·장르 태그, 승인 상태, 재생목록 편성, 재생 기록이 전부 날아간다. 그래서 곡은 그 자리에 두고 소리만 갈아끼웠다.
파일을 고치는 일과 그 파일에 붙은 것들을 지키는 일은 별개다. 데이터를 갈아 끼울 때는 「무엇이 이것을 가리키고 있나」를 먼저 세어 본다. 가리키는 게 많을수록 새로 만들지 말고 제자리에서 고쳐야 한다.
검수 도구는 앱 밖에 따로 세웠다
이 검수를 앱의 관리자 화면에 넣을 수도 있었다. 그런데 이 일은 내 컴퓨터에 있는 원본 파일을 열어 소리를 재고, 고친 파일을 다시 올리는 일이다. 서비스 서버는 남의 클라우드에서 돌고 내 컴퓨터의 파일을 볼 수 없다.
그래서 검수 콘솔만은 내 컴퓨터에서 도는 작은 도구로 따로 세웠다. 앱은 매장이 쓰는 것이고, 이 도구는 내가 쓰는 것이라 굳이 한 몸일 이유도 없었다.
도구의 모양은 기능이 아니라 「그 일이 어디서 벌어지나」가 정한다. 손대야 할 것이 내 컴퓨터에 있으면 도구도 내 컴퓨터에 있어야 하고, 그러면 서비스에 짐을 지우지 않고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.
「안 된다」가 고장이 아닌 경우가 있었다
같은 날 「필터가 안 걸린다」와 「재생목록이 안 만들어진다」를 짚었는데, 둘 다 기능은 멀쩡했다.
앞엣것은 조건을 바꿔도 저장을 눌러야 결과가 갱신되는 구조였다. 바꿔도 화면이 그대로니 안 걸리는 걸로 보였다. 뒤엣것은 운영자 권한으로 만들면 매장용이 아니라 운영자용으로 생겨서, 매장 화면에는 안 뜨는 것이었다.
증상은 같은 「안 된다」인데 하나는 화면이 늦게 따라온 것이고 하나는 만들어진 자리가 달랐던 것이다. 그래서 고치는 것도 기능이 아니라 각각 반영 시점과 만드는 규칙이었다.
안 된다고 느낄 때 기능부터 의심하면 대개 헛돈다. 먼저 물을 것은 「정말 없는가, 아니면 다른 데 있거나 아직 안 보이는가」다.
요약
- 사람이 못 하는 양을 기계로 거를 때는, 사람이 판단하는 근거를 숫자 하나로 바꿀 수 있는지부터 본다.
- 자동 판정의 어려움은 방법이 아니라 비교 대상에 있다. 전체와 비교할지 직전과 비교할지가 결과를 가른다.
- 불량을 지울지 고칠지는 그것을 만드는 비용으로 정한다. 고칠 때는 제자리에서 고쳐 붙어 있던 것들을 지킨다.
- 도구의 모양은 그 일이 어디서 벌어지는지가 정한다.
- 「안 된다」는 없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있거나 아직 안 보이는 것일 수 있다.